80년대 초 서울 변두리의 작은 이발소. 그곳에는 그 규모만큼이나 자그마한 체구의 이발사가 있다. 깔끔한 흰 셔츠와 단정한 머리, 말수가 적고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는 한가한 시간에는 이발 도구를 정리하거나 이발소를 청소하고, 차를 마시며 슬픈 사연을 낭독하는 라디오를 듣기도 한다.
이발소 ‘이씨(異氏)’는 괄괄한 여느 아저씨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하다. 손님들이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 떠들 때도 별다른 대꾸 없이 자기 일에 열중이다. 동네 3인방(구멍가게 ‘구씨’, 전파상 ‘전씨’, 박카스 ‘박씨’)이 “여자 같다”며 놀릴 때도 이씨는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더운 여름날에도 긴팔 셔츠를 고수하고, 이발소 문은 항상 닫아두며, 매일 아침 가슴을 붕대로 감는 이씨. 그렇다. 그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남들과는 다른(異) 자신을 지키며 그때 그 시절에도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아갔던 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렇게 또 힘이 된다.
“더운데 문 좀 열어놔!”라는 타박을 들어도 “아, 먼지 들어와~”라고 대꾸하고 말았던 이씨가 마침내 이발소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그의 마음의 문도 함께 열렸으리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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