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연은 이혼을 앞두고 남은 짐을 정리하기 위해 한때는 두 사람의 집이었던, 이제는 석준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간다. 무표정하게 짐을 챙기는 승연의 말투에는 시퍼런 화가 서려있고, 반대로 석준은 이상할 정도로 태연하고 상냥하다.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 편을 들어주겠다고,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겠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그도 남들과 다를 것 없는 ‘대한민국 남자’였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승연은 지쳐갔을 거다. 된장찌개 잘 끓이는 것 하나로 대단한 자랑거리 삼는 석준에게 승연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승연이 떠난 후, 석준은 밥을 먹기 위해 밥솥을 연다. 그러나 밥솥엔 밥이 없다.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밥 다 됐다’며 승연에게 같이 먹자고 했던 석준이었다. 텅 빈 밥솥을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켜켜이 쌓인 분노와 허망함으로 인해 승연이 홀로 감내했을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만 같다. 이제 승연이 떠나간 늦은 오후를, 석준은 막 맞이하려는 참이다.
인천에서 여성과 영화 관련 활동을 하며 10년 동안 막연히 연출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살았다. 꿈만 꾸고 지낸지 꼬박 10년이 지난 2018년 지역에서 만난 작은 인연들의 힘으로 뒤늦게 영화작업을 시작하게 되어 매년 한 작품씩 차곡차곡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삶을 담은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