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소진은 경찰 공무원 체력시험 준비에 열심이다. 소진과 몇번 데이트를 했던 남성은, 소진에게 계속 전화와 문자를 남기며 알려준 적도 없는 체육관에 찾아오고 집으로 택배를 보낸다. 운동장 한 켠에 놓인 철봉에는 현숙이 매달려 있다. 소진은 어쩐지 파란 슬리퍼를 신은 현숙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이야기 곳곳에는 폭력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심지어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소진에게도 집요하게 계속되는 잘 모르는 남자의 문자는 무섭기만 하고, ‘안전한 이별법’을 설명해주는 동생의 심드렁한 목소리에도, 택배상자에 붙은 송장을 꼼꼼히 떼어내는 손길에도, 구석구석 일상의 공포는 깊게 들어차있다.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손목에 든 시퍼런 멍 자국이 아닌 그 손을 붙잡아 이끄는 힘. 누가 가르쳐준 적도 또 약속한 적도 없지만 소진과 현숙의 손은 기어이 맞닿고야 만다.
‘여성연대’라는 딱딱한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 하는 힘’의 소중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허지은, 이경호 감독, 그리고 이태경 배우가 만들어낸 또 한번의 앙상블. <오늘의 자리>, <해미를 찾아서>와 함께 관람하기를 추천한다.